여름철 어느 날, 세종(1397~1450년)의 어머니인 정녕옹주 민씨는 남편인 이방원 정안군에게 말합니다.
"지난밤 한 꿈을 얻었었는데, 하도 신기하였어요."
"어떤 꿈이요? 말해 보시오." 정안군이 물었습니다.
옹주는 얼굴을 약간 붉히며,
"아 글쎄 붉은 해와 검은 황소를 보았읍니다."
"거 길몽인 것 같소. 큰 경사가 아니면 풍년이 들려는가 보오. 어디 자세히 말해 보오."라고 정안군이 말합니다.
정녕옹주는 약간 머뭇거리다가 말문을 엽니다.
"글쎄 제가 여기쯤 앉아서 경복궁을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난데없이 큰 황소 한 마리가 구름을 타고 북악산 위에 나타났는데, 그 소의 뿔 사이에 붉은 해가 빛을 발하며 끼어 있질 않겠어요."
"그래서요?" 정안군이 재촉합니다. 정녕옹주는 눈을 크게 뜨고,
"그런데 그 소가 봉우리를 헛디뎌서 그 붉은 해가 활활 타면서 산밑으로 떨어지는데, 궁이며 마을도 다 태워버릴 것만 같았어요."
"그래서요?"
옹주는 자세를 가다듬으면서,
"그런데 어디선가 붉은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서 그 해를 삼키더니 놀라 떨고 있는 제 품으로 들어와 안기는 것이었어요."라고 하며, 남편을 처다봅니다.
정안군은,
"거 심상치 않은 꿈 같소. 나도 지난밤에 꿈을 꾸었는데 이삭들이 잘 팬 벼를 바라보고 매우 흡족해 하였소."
“그랬어요? 아마 금년이 풍년이 되려나 보지요.”
"아니 그보다도 혹시 태몽이 아니겠소?"
"아이 나으리도 별 말씀을 다......”
정녕옹주는 그달부터 태기가 있었습니다.(이태극, 세종대왕의 어린시절, 세종대왕기념사업회, 1984, pp.14~16참조).